군복을 입은 채 맞닥뜨린 억압은 끝내 비극이 되었고, 남겨진 가족의 시간은 26년 동안 멈춘 채 흘러가지 못했다.
그러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의 조사와 국방부의 재심,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은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인은 늦게나마 국가로부터 재해사망군경으로 인정받게되어, 마침내 보훈보상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긴 기다림 끝에 드러난 진실
    1999년 5월,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군복을 입고 의무복무 중이던 한 청년이 휴가를 나왔다. 하지만 그 짧은 휴식은 끝내 마지막 시간이 되고 말았다. 선임병의 폭력에 이어진 억울한 상황 속에서 그는 한강의 물결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청춘의 삶은 너무도 갑작스레 꺾였다.
    ㄱ씨의 가족은 그날 이후 26년 동안 멈춰 선 시계 속에서 살아야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세월이 흘러도 상처는 옅어지지 않았다. 결국 20년이 훌쩍 지난 2020년, ㄱ씨 가족은 용기를 내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진상 규명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고인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군 복무라는 특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국방부도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벽이 가족을 가로막았다. ㄱ씨를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을 신청했으나, 휴가 중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군 복무와 분리해 버리는 그 판단 앞에서, 부모의 마음은 다시 무너져 내렸다.
  • 보훈의 이름으로 남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유족의 고통과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고인이 군인 신분으로 겪은 폭행과 그 뒤 이어진 비극의 과정은 군 복무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선임병과 병영생활 속에서 사과와 화해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는 위치, 그리고 불가피하게 이어진 이동이 결국 사고로 이어진 정황···. 이 모든 맥락을 종합해 고인의 죽음을 군 복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26년 만에 그는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았다.
    이제 그의 이름은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함께 기억해야 할 ‘희생’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늦게 찾아온 인정이지만, 그 빛은 오랜 어둠을 걷어내며 ㄱ씨 가족의 긴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번 결정을 통해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으나 불합리하게 희생된 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남겨진 가족이 억울함 속에 방치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손을 내밀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