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배우다
둥근 세상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결초보은(結草報恩)
사람은 타인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빚을 지게 되거나, 고마운 일이 생긴다. 사람들은 그 은혜를 갚고 또 빚을 지면서 굴렁쇠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writing. 허승희
죽은 뒤에라도 갚는 은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성어는 은혜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풀을 묶어 은혜를 갚았다는 한자인데, 진나라의 위과 덕분에 자신의 딸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자 그 여인의 죽은 아버지가 전쟁에 나선 위과를 위해 풀을 묶어 말이 넘어지게 했고, 그 덕에 위과도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여인의 아버지는 위과의 꿈에 나타나 ‘당신 덕분에 딸이 목숨을 구했기에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결초보은 외에도 은혜와 관련된 고사성어나 이야기들이 많다. 〈은혜 갚은 까치〉나 〈흥부와 놀부〉의 제비 등 작고 연약한 동물도 은혜를 입고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은혜에 관련된 전래동화나 속담의 수만 봐도 사람들이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북한에는 ‘은혜를 모르는 건 당나귀’라는 속담도 있을 만큼 은혜 갚지 않는 사람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비추기도 한다.
언제라도 늦지 않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삶은 우리가 받은 배려와 고마움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이를테면 버스 카드에 잔액이 부족해 당황할 때 인자한 미소로 받아주던 버스 기사님이나 덤벙대다 거리에 흘린 지갑을 주워서 가져다준 아주머니 등 사소하지만 감사한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물론 그때 도움을 준 사람들도 그날을 잊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당시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까치나 제비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디에선가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한다.
어느새 2024년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2024년의 첫 해돋이를 본 게 엊그제만 같은데 이제 주말을 몇 번만 보내면 2025년이 온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한다. 내가 올해 이룬 것들과 아쉬웠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 해에는 더 잘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이 과정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린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내가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도와준 사람들이다. 비단 올해뿐 아니라 과거의 일도 찬찬히 생각해보자. 그리고 새해가 밝기 전 2024년의 나를 위해 힘써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입술이 간질거려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나면 그 은혜의 보답은 반드시 또 다른 배려로 둥글게 돌아올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