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돋보기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본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2021년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1은 계급사회, 능력주의, 무한경쟁 등 한국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잘 구성한 ‘세트장’과 같았다. <오징어 게임>에 투영된 한국사회는 계급화되고 경쟁적이며,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였다.
<오징어 게임>이 뜻밖의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이후 K-콘텐츠에 대한 주목도는 더 높아졌다. 넷플릭스는 이후 <피지컬 100>, <사이렌 : 불의 섬>, <더 인플루언서> 등 ‘서바이벌’ 예능을 여러 편 제작했는데 <흑백요리사>도 그중 하나다.

writing. 오수경 자유기고가   reference.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등장

  • 지난가을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관심을 모은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 등장했다. <흑백요리사>는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가 의미하듯 ‘요리’라는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후각과 미각을 동원해야 하는 장르로 경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또한 ‘계급’이라는 메타포가 적극 활용되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 등 유명 요리사들이 ‘백수저’로, 급식 조리사, 작은 주점 사장 등 대중에게 덜 알려진 소위 ‘재야의 고수’들이 ‘흑수저’로 명명된 것부터가 의미심장했다. 왜 하필 ‘흑수저’일까? 흑수저는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습적 불평등과 계층 고착화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 주목받은 신조어 ‘흙수저’와 발음이 같다. 제작진이 의도했든 우연이든 ‘백수저-흑수저’ 구도는 ‘금수저-흙수저’를 떠올리게 했다. 과연 이들은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참가자 100명 중 백수저 요리사 20명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2층에서 도도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등장했고, 나머지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는 그 아래 1층에서 경쟁을 통해 생존한 20명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여 백수저와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 흑백요리사의 등장
나야, 계급

나야, 계급

‘서바이벌’ 방식의 예능 콘텐츠가 등장한 지 10년도 넘었고, 그것에 계급적 의미를 부여한 것도 그간 여러 콘텐츠에서 봐왔으니 이런 구도는 꽤 익숙했다. 그렇기에 흑수저 요리사들의 패기 있는 도전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룰 반전 서사가 이어지리라 예상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백수저 요리사들의 여유로운 태도와 흑수저 요리사들의 도발적인 언행이 교차되며 예상했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백수저 요리사와 흑수저 요리사가 일대일로 대결하는 미션에서 상대적으로 강자인 백수저 요리사를 응원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 의외였다. 이는 취향의 변화일까? 계급과 성공에 관한 인식이 변화한 탓일까? 전통적으로 대중은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이른바 ‘언더독(underdog)’의 성장과 성공 서사에 열광해 왔다.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계급을 넘어서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계급 상승을 이루기 희박해진 사회가 되어가며 많은 이들이 구조적 불평등의 벽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계급’ 또한 실력이라 믿으며 이미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2층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 같은 이들을 오히려 선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더독’과 같은 성장형 캐릭터보다는 원래 강한 캐릭터, 즉 ‘먼치킨’ 캐릭터가 최근 대중문화에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흑백요리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만찢남’과 같은 이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대중은 불안정하고 거친 인성을 가진 아마추어보다는 실력을 갖춘 요리사들이 안정적으로 선보이는 요리에 더 호감을 보인 점이 특이했다. <흑백요리사>는 계급적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캐릭터의 매력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대결 과정에서 백수저 요리사 최현석이나 에드워드 리와 같이 경력과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긴장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을 보일 때 대중은 그것을 ‘무능력’이 아닌 ‘인간미’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에 에드워드 리처럼 순박한 겸손한 태도가 더해지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물론 <흑백요리사>의 이런 계급적 특성이 견고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공인된 실력자인 백수저 요리사여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초반에 탈락할 수 있다는 게 ‘서바이벌’ 세계의 묘미다. 즉, 모두가 ‘경쟁’해야 생존할 수 있는 위험하고도 피곤한 세계가 <흑백요리사>는 구현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추구해도 백수저 요리사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2층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계급의 격차는 이상하게 여기지도, 불공정이라 인식하지도 않는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단순한 설정으로 여긴 걸까? 그런 계급의 격차는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일까?

ICON
모두가 ‘경쟁’해야
생존할 수 있는 위험하고도
피곤한 세계가 <흑백요리사>는
구현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인 셈이다.

우리 사회, 과연 '이븐(even)하게' 작동되고 있을까?

‘계급’과 관련한 <흑백요리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급 레스토랑을 의미하는 ‘파인다이닝’ 세계와 대중을 상대로 한 ‘대중식당’ 세계의 선명한 대비다. 요리는 개인의 창의적 표현 수단임과 동시에 한 사회의 문화적·경제적 계급 격차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제작진은 요식업 경영인이자 대중의 입맛을 잘 아는 백종원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오너 셰프인 안성재를 심사위원으로 세워 이 두 계급 격차를 보여주었다. 심사위원 구성뿐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도 두 세계는 차별점을 보인다. 참가자 중 파인다이닝 요리사인 ‘트리플스타’가 심사위원인 백종원을 두고 “직관적인 맛을 좋아하시고 대중적인 요리를 하시는 분인데 제가 이만큼의 노력을 했을 때 딱 한 입 드셔보시고 아실 수 있을까?”라고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대중적인 요리’를 하는 사람은 파인다이닝 요리사인 자신의 요리를 잘 모를 것이라고 얕잡아 생각한 것으로 대중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 요리사는 당연하게 “셰프”로 불린 반면에 그렇지 않은 요리사, 특히 여성 요리사는 아무리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어도 “이모” 혹은 “어머님”으로 호명된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4라운드 팀 대항전에서 파인다이닝 요리사들은 자연스럽게 메인 셰프 역할을, 한식 요리사들은 재료 손질 등의 작업을 하는 것으로 나뉘었다. 이런 구도는 ‘파인다이닝’의 세계와 ‘대중식당’의 세계의 차이를 보여줄 뿐 아니라 양식과 한식의 차이도 보여주었다. 아무리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도 양식은 ‘기술’이 중요하게 여겨지며 ‘올려치기’하고 한식은 ‘어머니의 손맛’으로 형상화되어 평가절하되었다. <흑백요리사>가 보여준 이 대비는 한국사회의 문화적·경제적 계급 격차를 체감하게 했다. <흑백요리사>는 한국 사회의 계급적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 거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미 계급화되고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계급’을 비판적으로 감각하고, 경쟁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식상하고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에 관한 성찰적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 거울에 비친 우리 혹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풍경일까? 적어도 ‘이븐하게’ 작동되는 곳은 아니지 않을까?

* 이 기사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