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 히어로

어쩌다 부모가 된 총각

김태훈 새터민청소년그룹홈 ‘가족’ 대표

평범한 직장인이던 김태훈 대표가 ‘총각엄마’가 된 지 벌써 자그마치 20년이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아이들은 김태훈 대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영국 BBC까지 소개된 그의 삶,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김태훈 대표를 직접 만나보았다.

writing. 허승희   photo. 신현균

가족이 될 결심

  • 환히 웃으며 반겨주는 그의 모습은 꼭 친구 집을 방문하면 맞이해주는 친구네 어머니 같았다. 김태훈 대표는 20년 전 우연한 계기로 탈북민 아이들의 부모가 될 결심을 했다. “방에서 혼자 TV를 보다가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차마 두고 갈 수 없더라고요.” 회사 선배를 따라갔던 봉사 활동에서 만나게 된 첫째 염하룡 씨를 시작으로 벌써 27명의 아이를 만난 김태훈 대표. 요즘엔 아이 한 명 낳아 키우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데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와닿았다.
    “아동 미술 학원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어서 아동 출판사에 입사하게 됐는데요. 원래 아이들을 특히 더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피도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당연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김태훈 대표는 운명 같은 만남 이후로 아이들을 자식으로 키우게 됐다.
    그가 돌보는 아이들은 고향이 북한이다. 어린 나이에 북한에서 내려와 남한에 정착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태어난 곳이 북한일 뿐이지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게 없어요. 힘든 시기를 겪었음에도 다들 밝고 착하죠.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심지어 전교 학생회장을 했던 친구도 있어요.” 자식 자랑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김태훈 대표는 아이들 이야기에 입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본인과 지내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 가장 고맙다며 웃었다.

  • 작은 관심이 피운 불씨1
    작은 관심이 피운 불씨2

부모가 체질인 총각

김태훈 대표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엄마, 아빠 노릇을 혼자서 모두 해내야 했다. 홀로 살며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그립진 않은지 궁금해졌다. “전 지금이 행복해요. 직장 생활보다 엄마 노릇이 몸에 맞나 봐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남들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데 아이들과 지내며 행복한 일이 더 많은 건지 정말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등교 전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모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해낼 수 있는 것들이란다. “저는 20년 동안 애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아침식사를 안 차려준 적이 없어요. 이거 하나는 정말 자랑처럼 말할 수 있어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에서 온 아이들이기에 언제나 든든한 끼니를 챙기고 싶다는 김태훈 대표는 먹성 좋은 아이들을 위해 끼니때가 되면 살뜰히 밥상을 차린다. 우스갯소리로 하루에 세 끼를 차려야 하는 방학이 무섭다는 그의 말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다른 고민이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힘든 건 전혀 없어요. 다만 사회의 시선이 저랑 아이들을 힘들게 했죠.” 남학생들과 성인 남성 한 명이 사는 집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보호시설이라는 간판이 없는 그룹홈임에도 시설 관리·감독을 이유로 때때로 방문하는 구청 직원들 때문인지 이웃들이 항상 기웃거렸다. “그룹홈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정기적으로 점검을 나와요. 그때 보고 알게 되는 거죠. 다른 가족들과 다를 것 없는데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미워하는 사람도 있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10인분의 밥을 하고 빨래를 해도 힘들지 않다는 김태훈 대표는 아이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가장 힘들단다. 혹여 상처를 받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보호자로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더욱 단단해졌다. “일부러 더 우리의 삶을 보여주려고 해요. 매번 오는 섭외 요청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이렇게 잘 산다. 우리도 그저 평범한 가족이야’를 보여주려고 하는 거거든요. 어때요? 저희 정말 잘 살죠?”
김태훈 대표는 그룹홈이 다른 보호시설과 다른 성격을 띠는데도 같은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도 고충이라고 덧붙였다. “여기는 집인데 어떻게 식단표가 있겠어요. 그냥 일반 가정집처럼 그때그때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거 차려주는 거죠. 아이들과 상담할 때도 예민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묻는 것도 참 아쉽습니다. 아이들에겐 상처일 수 있거든요.” 김태훈 대표는 힘들게 대한민국에 정착한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생길까 늘 노심초사다. 여태 잘 버텨왔지만 20년 동안 변함없는 행정 처리에는 그도 적응하지 못한 듯했다.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그룹홈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아이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국민권익위원회가 잘 살펴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가능한 만큼에서 가능성 발굴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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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용서받는 사이

김태훈 대표에게 집과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집은 아무리 비좁고 더러워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서 씻어야 하고,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그래도 이곳이 저나 아이들에겐 가장 편안한 공간이에요. 그게 바로 집이죠.” 어려운 재정 탓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곳은 정착돼 있지 않다. 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지만, 모두가 함께인 그곳이 그들이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집이란다.
“가족은 무엇이든 용서받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요? 아무리 잘못한 게 있어도 쭈뼛거리며 집으로 다시 찾아오잖아요. 혼나는 건 무섭지만 기댈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저희 애들도 그래요. 사고 치고 절 찾아요. 그래도 어떡해요. 가족인데 품어야죠.”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잘못해도 된통 혼나고 마는 것. 무섭게 한번 꾸짖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 내밀어주는 것. 그런 그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는데요.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면서 장벽을 허물고 그곳에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생겼어요. 거기에 있는 작품들을 보고 꿈이 생겼어요. 언젠가 그 벽에 아이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요.” 언제나 즉흥적으로 살아와서 이렇다 할 미래 계획이 없다고 했던 김태훈 대표는 문득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며 생애 소원을 밝혔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20명 넘게 기른 김태훈 대표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베를린 장벽 한 면을 멋지게 장식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들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전할 것만 같다. 사람 사는 냄새가 깊게 배인 그들의 집에서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