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 히어로
길 잃은 아이들의 나침반이 되다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
이 세상에는 무수한 사연이 존재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에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소녀도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작은 생명을 포기해야만 하는 외국인도 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봉사해 온 이종락 목사를 만나 보았다.
writing. 허승희 photo. 황지현
아들이 맺어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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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목사의 둘째 아들은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생활했다. 그 당시, 이종락 목사는 병원의 환아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해져 일명 ‘기도 아저씨’로 불렸다. 어느 날 옆 병동에 와상 장애로 입원한 손녀딸을 둔 할머니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손녀딸을 맡길 데가 없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라며 이종락 목사에게 아이를 맡아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이 목사는 어려운 형편에 가족들마저 고생하는 상황이라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고민 없이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렇게 이종락 목사 부부는 아픈 아들과 할머니의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이듬해 할머니는 손녀를 두고 먼 길을 떠났다.
자택 치료를 몇 개월간 했더니 누워만 있던 할머니의 손녀는 휠체어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두 아이의 정기검진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의사는 놀란 눈으로 목사 부부를 맞이했다. 극진하게 아이를 돌본 정성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의사는 이종락 목사에게 어려운 부탁을 건넸다. “병원에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는 장애 아동 네 명이 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목사님께서 이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나요?” 이종락 목사 부부는 차마 불쌍한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갈 곳 잃은 아이들의 나침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
영화 <드롭박스> 포스터
한국형 베이비박스의 시작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이종락 목사 부부가 장애 아동들을 데려와 보살핀다는 소문이 나자 부부의 집 앞에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두고 가는 일들이 잦아졌다. 공중전화박스, 옆집 주차장, 심지어는 경찰이 먼저 아이를 발견해도 부부에게 데려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2007년 4월 초 꽃샘추위에 날이 차가웠는데요. 한참 자다가 새벽 세 시쯤 어떤 남자의 전화를 받았어요. 설명도 없이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고 끊었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서둘러 이종락 목사가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몇 마리의 고양이가 휙 도망치고 그 앞에는 생선 박스가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생선 냄새를 맡고 박스를 열려고 했던 것인지 선명한 발톱 자국이 남아 있는 박스를 열었더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곳에 놓여 있었는지 아이의 몸은 차가웠고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이였다. 하마터면 아이가 잘못될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은 이종락 목사는 얼른 아이를 집으로 들였다. 그렇게 또다시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그들에게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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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목사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안전하게 아이들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생각했다. “2008년 한 신문사의 외신 보도를 통해 체코의 베이비박스를 알게 됐습니다. 사실 한 명의 아이도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정말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곳을 통해 안전하게 제게 올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죠. 그래서 용기를 내 2009년 12월에 첫 베이비박스를 설치했습니다.” 베이비박스 설치 후 3개월 뒤, 2010년 3월 첫아이가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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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 피어난 희망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올해 4월 15일까지 2,138명의 아기가 보호됐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비박스의 운영 체계가 탄탄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면 10초 이내에 보육사가 실내로 데려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사진을 촬영합니다. 동시에 상담사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죠.” 전문 상담사의 상담을 통해 베이비박스를 방문한 부모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육아 지원 등의 내용을 전하며 아이를 기를 것을 권유한다.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정하면 양육 키트와 생활비, 주거비, 병원비, 법률 지원 등 3년간 무상으로 지원된다. 지원 내용을 듣고 양육을 결정하는 부모들도 많다. 당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즉각적인 지원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미혼모나 아이를 돌볼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에게 무상 양육 지원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종락 목사의 이야기를 다룬 브라이언 아이비(Brian Ivie)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박스〉는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이비박스는 위험한 장소에 아이를 유기하는 것을 예방해 아이와 엄마를 모두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종락 목사는 인터뷰 내내 아이와 엄마를 모두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눈총이 두려워 혼자서 끙끙 앓던 어린 엄마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눈물 흘렸던 미혼모는 이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한 걸음 더 성장해 나갔다.
모든 생명을 위한 길
베이비박스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는 주제다. “세상에 유기를 위해 출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말은 이종락 목사에게 황당하게 들릴 뿐이다. 베이비박스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2022년 7월에는 상담 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것은 유기가 아닌 보호로 판단하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일 「보호출산제」가 국회를 통과해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선(先) 지원 후(後) 행정으로 위기임산부가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이 법을 통해 더 많은 아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늦은 행정 처리와 미흡한 법으로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종락 목사는 새로이 마련된 법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복잡한 제도와 행정 처리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이종락 목사. 그에게는 아직 더 큰 꿈이 남아 있다. “종교기관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위기임산부상담센터로 지정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으로 사회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법인을 설립해 위기임산부상담지원센터와 위기영아일시보호소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보호된 아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장애인 가정을 위한 장애인가족 힐링센터를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키겠습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생명을 품은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이종락 목사의 진심 어린 말에 위로받은 엄마와 아이들이 있다. 그가 지킨 생명들은 무럭무럭 자라 장차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