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돋보기
유쾌한 사투리 뒤에 숨겨진 떨떠름한 현실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
이승철의 ‘소녀시대’가 서울 거리를 휩쓸던 1989년, 충남 부여 농고에서는 쿠팡플레이의 최고 흥행작 〈소년시대〉가 시작된다. 〈소년시대〉는 온양에서 별 볼 일 없이 살던 장병태(임시완)의 학창 시절 이야기다. 맞아도 보고, 때려도 본 병태는 끔찍한 학교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
writing.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photo. 쿠팡 뉴스룸
온양 찌질이의 반전
조용히 살고 싶었던 병태는 전학 첫날부터 일진 무리에게 충남 최고의 싸움짱 ‘아산 백호’ 경태(이시우)로 오해를 받아 일순간 부여 농고의 짱이 된다. 당할 땐 경멸했지만, 막상 대접을 받아 보니 군림하는 삶이 싫지가 않다. 병태는 그 기회를 덥석 잡고 의기양양한 나날을 보낸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병태는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이렇듯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인물의 양면성을 나타냈다.
불안하던 병태의 짱 생활은 진짜 ‘아산 백호’ 경태가 병태와 같은 학교로 전학 오면서 마무리된다. 백호 노릇을 하던 때의 업보를 청산이라도 하듯 전학 전보다 훨씬 비참한 학교폭력 피해자로 살아간다. 그렇게 때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두드려 맞고 친구들의 돈을 거둬 꼬박꼬박 상납하며 비루하게 지내던 어느 날, 병태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부여 농고 학교폭력의 피라미드를 전복하기로 결심한다.

잔인했던 과거의 재연
1980년대의 충남 부여의 한 시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으로 현실감을 덜어내고, 교복을 입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이선빈과 임시완의 멍한 얼굴과 충청도 사투리의 코미디 코드가 강렬한 학교폭력의 상흔을 옅게 만들어서 그렇지, 실제로 〈소년시대〉는 폭력으로 작동하는 생태계가 당연시되던 당시 학교 사회를 소환한다. 싸움을 잘하는 무리가 동급생, 후배들을 괴롭히고 짓밟고 짓밟히는 폭력이 일상인 세계다. 더욱 슬픈 건 도움을 줄 희망이 없다는 데 있다.
병태가 경태에게 심하게 맞아 병원에 실려 가 입원했지만, 학교는 이때마저 기능하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는 형식적인 사과로 마무리하려는 선생님들을 보고, 병태 아버지는 시원한 쌍욕을 날린다. 법과 도덕, 교권과 책임보다는 주먹과 힘이 앞서는 세상에 편승하고, 원칙보다는 쉽고 편한 해결을 택하려는 책임감 없는 어른들은 학교폭력의 진정한 가해자다.

순결한 피해자? 최악의 빌런?
〈소년시대〉는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함과 B급 정서로 웃음을 빵빵 터트리는 와중에 학교폭력에 대한 고민을 담는다. 〈소년시대〉는 학교폭력을 단순히 선악 구도로 만들지 않고 그 원인과 해결에 대해 시선을 열어 놓는다. 주연을 맡은 임시완도 병태를 연기하면서 선한 역할로 보이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병태는 피해자이면서 더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최종 빌런인 경태도 아무 이유 없이 병태를 괴롭히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럴 때는 위험과 잘못을 감지하고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힘이 있음에도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응징하는 부여 독거미(이선빈)의 존재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담은 판타지의 시작점이다. 1980년대, 그 시절의 학교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근절되고 사라져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켜봐야 하는 것을 시골 풍경, B급 감성, 코미디로 포장한 학교폭력을 통해 역설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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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말이여 아주 소박햐,
안 맞고 사는 것.
딴 놈들맨치로 평범하게 사는 것. -
스스로 이겨내라는 씁쓸한 결말
마지막 2화를 할애해 준비한 일격의 카타르시스가 가슴 깊은 울림으로까지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병태는 독거미에게 싸움 과외를 받으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에 부합하는 익숙한 사적 복수로 해결한다. 그러나 이 자력구제 판타지는 사실상 현실 부조리의 대안 부제를 뜻한다. 코믹한 코드가 액션의 카타르시스로 100퍼센트 전환되지 못하는 건 극적 판타지가 제공하는 통쾌함이 익히 봐온 출구 전략이며, 무엇보다 현실에 영감도 줄 수 없다 보니 대리만족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맞으면서 강해진 병태의 맷집은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삶의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는 삶의 역설을 담은 재미, 울분의 폭발, 약자들이 연대해 일진에 대항하고 전복한다. 통쾌한 성장 서사다. 그런데 어른들, 시스템으로 상정할 수 있는 학교와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 결국 약자, 피해자들이 강해져야 한다는 서글픈 결론에 다다른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초반 병태가 짱 놀이에 도취했듯 어쩌면 이 영웅들이 또 다른 정복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사적제재물이 흥행하면서 정의구현 영웅 서사의 카타르시스는 흔한 판타지가 됐다. 정겹고 신선하면서도 풍성한 비빔밥 같은 〈소년시대〉에 딱 한 가지 아쉬운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설정도 접근도 신선했지만, 결말이 힘이 빠지는 이유는 결국 더 큰 힘을 키워서 스스로 해결하라는 자력갱생의 판타지가 결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