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시선

우리 반 교실,
무례한 친구가 생겼어요

본격적인 사회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 새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때때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모든 게 처음인 아이들에게 우린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writing. 이은경 자녀교육전문가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얼마 전 『무례한 친구가 생겼어요』라는 그림책 번역판이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영어 원서가 출간된 미국 현지 아마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던 후기는 ‘내게 무례했던 그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라는 한 아이의 짧은 고백이었다. 친구의 무례함으로 인해 속앓이했던 이 아이는 자신에게 무례했던 그 아이가 본인의 무례함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을 것이고, 혹시 모르고 있다면 본인으로 인해 힘들어했던 나와 같은 친구가 있음을 넌지시 알려 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괴로웠는데, 나를 괴롭게 한 친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괴로움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부모도 이미 알고 있다. 잘 지내려고 노력해 보지만 함께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상하고 불편한 친구, 장난처럼 말하면서 내게 상처 주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이는 배운 적이 없다. 특히나 이제 막 초등학교라는 새롭고 거대한 사회에 입학한 아이들은 장난과 괴롭힘의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더욱 대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성장하는 시기의 교실 속 아이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대표적인 관계의 어려움이다.

참된 어른의 역할

부모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기도, 아이보다 더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아이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하면 “너도 똑같이 때려 주지 그랬어!”라며 화를 내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지시가 아이를 위한 최선이 될 수 없음을 부모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아이들과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싫은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여린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이런 식의 괴롭힘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끙끙 앓는 아이를 향한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의 장난이 친구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모른 채로 성장하며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에 관한 안타까움도 컸다. 무심코 했던 장난이 누군가에게는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초등 교실에서는 친구가 어떻게 느낄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냥 장난이었어요.”라는 말로 넘어가려는 불편한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돕는 것도 어른의 역할이지만 이 행동이 상대를 괴롭게 한다는 걸 모르고 하는 중인 아이를 친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으로 알게 하여 행동을 교정하는 것 역시 어른의 중요한 역할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경계’

그렇다면 무례한 친구로 힘들어하는 아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어떤 도움과 조언을 주는 어른이 되어야 할까? 무엇보다 친구 사이의 ‘경계’에 관한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친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초등 교실 속 아이들에게 ‘무례함’의 의미와 친구 사이에 꼭 필요한 ‘경계’의 개념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친구 사이에는 지켜야만 하는 선, ‘경계’가 있다. 그 선을 지키지 않는 친구를 ‘무례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하자면 이런 식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친하다는 말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우린 친구지만, 우리 사이엔 지켜야 할 선, ‘경계’가 있어!”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하는 아이에게는 내 생각을 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알려 주고,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구는 아이에게는 경계의 개념을 알려 주는 대화법이다.

더 나은 교실을 위해

무례한 친구에게 경계선을 긋는 것은 친구에게 화를 내는 것도, 싸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일이다. 나를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례한 친구에게 화내지 않고, 울지 않고, 단호하게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전달하는 방법을 연습해 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경계의 개념을 배운 아이는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의 행동이 괴롭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연습과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점차 건강한 우정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또 자신만의 경계를 설정해 보는 것은 자기 조절력, 자존감, 자기 주도성 등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는 어른의 진심이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지 않도록 ‘친하다는 말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어른의 역할을 시작해 보자.